티스토리 뷰
김기덕 라트비아 사망 (코로나19)
영화감독 미투운동 피에타 베네치아 황금사자상
- 의외의 속보가 전해져왔습니다. 다름 아닌,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한때 이름을 떨쳤으나 성폭력 의혹으로 국내에선 몰락했던 김기덕이 라트비아에서 다름아닌 코로나19와 관련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영화감독으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으나, 그에 못지 않은 큰 논란의 인생을 살아온 김기덕 감독의 삶과 이번 사망 소식에 대해 쉽게 다루어보겠습니다. 아래 포스팅의 내용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1. 김기덕 감독 프로필
▼출생: 1960년 12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사망: 2020년 12월 11일 (만59세) 라트비아 리가
▼사인: 코로나19 감염
▼본관: 경주 김씨
▼학력: 총신대학교 신학 중퇴
▼직업: 영화 감독
▼신체: 170cm
▼가족: 아내, 딸
▼병역: 해병대 부사관 출신
▼감독데뷔: 1996년 악어
2. 김기덕 감독의 삶
- 김기덕은 1960년 12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출생, 10살 때 현재의 경기도 고양시로 이사한다. 그러나 가정형편이 워낙 어려워서 국민학교 졸업 후 농업학교에 진학하였고, 최종 학력은 초졸에 불과하다 (대학교 중퇴).
십대 시절부터 온갖 공장을 전전하면서, 6.25 상이군인인 아버지와 시각장애인인 어머니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김기덕은 스무살이 되자마자 해병대에 지원해 5년 동안 부사관으로 복무한다.
제대 후 상기한 총회신학대학교에 진학하였으나, 결국 중퇴했고 이후 온갖 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30살에 훌쩍 프랑스 파리로 떠나, 3년간 거주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다. 물론 말이 공부지, 떠돌이 생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이후 32살 때, 9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영화감독 [조나단 드미(2017년 향년 73세로 별세)]의 [양들의 침묵(1990)]과 프랑스 영화감독인 동갑내기 [레오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1991)]들을 보면서 난생 처음 영화를 접하게 되고, 이윽고 영화 감독을 꿈꾸게 된다.
1993년, 결혼과 동시에 김기덕은 영화계에 입문하기로 결심하였고,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에서 교육과정을 마친뒤 1995년에 [무단횡단]이라는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전 대상을 타면서 영화계에 드디어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김기덕이 만든 영화가 바로 [악어]이며, 여기서 김 감독의 페르소나인 조재현이 주연을 맡으면서, 이후로도 김기덕의 작품에 출연하였고, 서로 막역한 사이가 된다.
악어는 한강둔치에서 노숙하면서 가끔씩 한강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을 대신 건져내 지갑을 털고, 시신은 숨겼다가 유가족에게 삥을 뜯고서야 돌려주는 악어의 삶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현정이라는 여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걸 살려주게 되는데...
김기덕은 이후 화려한 성공을 거둔다. 정확히는,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우는 [칸]. [베네치아], [베를린] 영화제에서 모두 본상을 받은, 현재까지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영화감독이다.
특히, 2012년 베네치아 영화제에선 [피에타]로 가장 권위있는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영화계에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의 최고상을 선사해주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해외에서 김기덕이라는 이름은 영화계에서 잘 알려져있고 후술할 성폭력 논란도 국내에 비해 관대하면서도 약간 사생활처럼 여기는 측면이 있기에, 국내랑 다르게 해외에서는 사망 전까지 별다른 제약도 없었다.
김기덕 감독은 국내 주류 문화계에 푸대접과 집요한 공격을 받기도 했다. 오죽하면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본상을 타자 [그 상 타려고 해외 영화제만 노린다]라는 소리나 해댔고, 그와 별개로 김기덕의 영화자체도 씨네21이나 키노 등에서 혹평을 받기도 했다.
다만, 김기덕의 영화는 난해하면서도, 대부분 폭력적이고 충격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칠면서도 특히 [폭력]이라는 주제가 영화 전반에 깔려있기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오히려 관객이 이해해야하고, 몇번이나 곱씹어야 한다.
덕분에 진보, 보수 너나 할 것없이 비판 할 만한 요소가 김기덕의 영화에는 가득하고, 그 때문인지 해외의 찬사와 별개로 흥행에 거의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 저예산으로 찍어서 손해가 거의 없다는 건 불행 중 다행?
그렇게 거장으로 대우받던 김기덕의 민낯이 드러난 건 2018년 상반기를 휩쓸었던 미투 운동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사회 전반, 특히 문화예술계와 스포츠계에 만연했던 성폭력에 대한 연대와 용기의 움직임을 뜻했다.
이미 그 전부터 영화 촬영에 폭행이나 강요 등의 혐의로 벌금을 선고받기도 했던 김기덕 감독은, 성폭력 혐의로 큰 비난을 당했고, 이로 인해 국내에서의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다. 여기에 그의 페르소나인 조재현도 엮인 건 덤.
이에 대해서 김기덕 감독은 무죄를 주장하며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자신을 폭로한 여배우와 PD수첩 등을 고발하는 등 법적으로 대응한다.
결론만 말하면, 김기덕 감독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법원 판결을 받은 건 상기한 약식기소된 폭행 부분에서 받은 벌금 500만원이 전부다.
2. 사망
- 그 뒤, 뜸하던 김기덕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무래도 세계적인 명성과 인지도를 갖고 있던 감독이었기에 해외 언론에서도 보도를 했으며, 김기덕 사망한 라트비아 현지 언론도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김기독 감독의 사망을 보도한 라트비아 현지 언론인 DELFI의 보도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참고로 라트비아는 북유럽에 있는 공화국으로, 러시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벨라루스와 인접한 인구 186만의 작은 나라입니다.
▼라트비아 1인당 명목 GDP - 18,172달러 (2019년, 한국은 30,644달러)
▼김기덕 감독은 2020년 11월 20일 라트비아에 도착했다. 이유는 유르말라(Jurmala)라는 도시에서 집을 구입하고 거주 허가(영주권)를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친분이 있던 러시아 감독인 비탈리 만스키(Vitalijs Manskis, 1963~)와 연락을 주고 받았으나 12월 5일부터 연락이 닿지 않아 수소문 끝에 알아보니, 코로나19로 인해 입원을 하였고, 이것이 악화하면서 12월 11일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김기덕 라트비아 사망 소식은 그의 통역사인 Darya Krutova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주 라트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은 이에 대해 아직까지 별다른 언급이 없음
이것이 지금까지 김기덕 감독의 대략적인 삶 & 라트비아 사망과 관련된 소식입니다. 해외에서 거장으로 명성을 떨치던 김기덕에 걸맞지 않는 씁쓸한 마지막이었습니다.
가족과 지인들도 국내에서 소식을 접했다고 하니, 아마도 타향의 병실에서 혼자서 세상을 떠났겠지요. 이 소식으로 국내 누리꾼의 반응은 다양하나, 대체로 [인과응보]라는 평이 대다수입니다.
자세한 김기덕 감독의 삶과 성폭력 논란, 그리고 라트비아 사망 소식 등은 아래 바로가기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관련 소식 업데이트도 추후 갱신 될 것입니다.